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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년 전, 핀란드에 민나 칸뜨가 태어났다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한국기자협회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2019.03.13 15:30:14

한국기자협회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한국기자협회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가끔 곳곳에 핀란드 국기가 게양된 아침이면, 핀란드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만 원가량 하는 달력이나 스케줄러를 사면, 스무 개 남짓한 날짜에 기념일 이름과 국기가 그려져 있다. 미리 의미를 알고 때맞춰 특별한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고, 관련 행사를 찾아가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국기게양일 가운데 문학과 언어 관련 기념일이 엿새나 된다는 것이다. 시인 루네베르그 기념일(Runeberg Day, 2월5일), 서사문학 칼레발라의 날(Kalevala Day, 2월28일), 극작가 겸 언론인 민나 칸뜨 기념일(Minna Canth Day, 3월19일), 핀란드어 기념일(Mikael Agricola Day, Finnish Language Day, 4월9일), 시인 에이노 레이노 기념일(Eino Leino Day, 7월6일), 소설가 알렉시스 끼비 기념일(Aleksis Kivi Day, 10월10일)이다.


이 가운데 특히 무게감이 남다른 날은 민나 칸뜨 기념일인 3월19일이다. 민나 칸뜨는 문학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 참여적 글과 실천으로 여성 지위를 높이는 데 일조한 작가다.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핀란드어 기사를 여러 신문에 기고해 언론 역사에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19세기 중반까지 대다수 핀란드 문학은 스웨덴어로 쓰였고,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7년 핀란드 정부는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민나 칸뜨의 생일을 국기게양일로 지정했다. 올해는 그의 탄생 175년 되는 해로, 공연과 강연, 학술대회 등 여러 행사가 진행된다.
민나 칸뜨는 ‘핀란드의 첫 여성 작가’로 불린다. 1880~1890년대에 활동하며 소설과 희곡, 수필과 칼럼을 핀란드어 및 스웨덴어로 남겼다. 글로 이름을 알리고 사업도 성공했지만, 남편 없이 일곱 자녀를 홀로 키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작가는 여성이 부당하게 대우받던 시대, 남성 중심적인 사회 및 가정 문화를 비판하면서 보편적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 앞장섰다. 이를테면 희곡 ‘노동자의 아내’(Työmiehen vaimo, 1885)는 주정뱅이에 무능한 남편과 낡은 법률 때문에 고통받는 당찬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당시 핀란드는 열악한 농업 환경 탓에 남녀 모두 일해야 하는 사회였지만, 여전히 가사노동 대부분은 여성에게 더 몰렸다. 게다가 여성을 남성 배우자 소유로 여기는 법 때문에 아내들은 허락 없이 돈 버는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민나 칸뜨의 작품이 공연된 이후 핀란드 사회는 구시대적이었던 법을 바꿨고, 여성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은 지위를 얻었다.


이처럼 민나 칸뜨의 작품은 가난, 계급, 불행한 결혼생활, 영유아 살해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사회 불평등을 직시하는 현실성 짙은 작품으로 대중에게 사랑받고 사회 변화에도 기여했다.


민나 칸뜨 이후 핀란드는 계속 불평등을 고쳐나갔다. 핀란드 여성들은 1906년에 참정권을 얻게 되었고, 이듬해 여성 의원 19명이 입법에 참여해 성 평등에 중요한 제도를 많이 마련했다. 이후 무상 급식법(1943년), 육아휴직의 개념을 규정한 육아 지원법(1985년), 취학 전 아동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권리(1996년) 등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이 성별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양성평등에 그치지 않았다. 2015년 성 중립 혼인법을 마련했고, 2018년에는 두 엄마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두 사람을 모두 보호자로 인정하도록 하는 새로운 모성법(Maternity Act)을 마련했다.


핀란드는 지난 2017년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성평등상(Gender Equality Prize)을 제정했다. 복지나 교육, 지속가능한 성장과 같은 장기적 국가 운영에서 성 평등이라는 가치를 아주 중요한 축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이 가치를 우선순위에 둘까 싶다. 최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촛불혁명을 재조명하며 거의 모든 언론사가 각종 기획물을 생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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