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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라인이 트뤼도 총리를 흔드는 이유

[글로벌 리포트 | 캐나다]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2019.07.31 15:26:54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

캐나다의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이슈가 10월 총선에서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로키산맥이 지나는 알버타주의 오일샌드에서 서부 해안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로 원유와 가스를 운반하는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놓고 내부 논란과 갈등이 더할 수 없이 격해졌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6월 총 예산 93억달러가 투입되는 파이프라인 확장 건설 프로젝트를 공식 승인했다. 알버타주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가스는 대부분 값비싼 열차운송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되는데, 원유업체들은 엄청난 국부 손실이라고 주장한다. 파이프라인 확장을 통해 유조선 운송이 늘어나면 수익성이 향상되고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의 수출도 늘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환경문제는 경제적 이익을 내세워 가볍게 누를 수 없다. 파이프라인 건설은 이전 정부인 진보보수당 정권 시절부터 오래도록 분란만 일으키고 해결 못한 문제다. 알버타주~미국 걸프만을 잇는 과거 파이프라인 건설안은 환경보호론자들과 땅소유자들이 제기한 소송의 늪에 빠져 있고,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북쪽을 통과하는 안도 검토된 적이 있지만 해당 지역 원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파이프라인과 관련된 정치 지형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알버타주는 당연히 파이프라인 건설을 적극 원하고 있다. 특히 45년에 걸친 진보보수당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알버타주 집권당에 오른 신민주당의 레이첼 노틀리 주지사는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터라 물러설 곳이 없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가 환경과 관광자원 보호를 위해 파이프라인 확장에 반대하자 노틀리 주지사가 브리티시컬럼비아주로부터 와인을 사지 않고, 오일과 가스 송출을 줄이겠다고 협박하는 강수를 둔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입장은 조금 복잡하다. 해상 원유유출사고 위험을 우려하는 환경보호론자, 거주영역 훼손을 걱정하는 원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지지하는 원주민들도 없지 않다. 도시지역과 외곽지역 간 온도차가 있다. 중심 도시인 밴쿠버, 주도인 빅토리아는 반대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존 호건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주지사는 노틀리 알버타주 주지사와 같은 신민주당 소속임에도 녹색당과 연대해 파이프라인 건설을 막기 위해 뛰고 있다. 주정부가 연방정부와 맞서고 법원이 판단을 내리는 등 사안은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졌다.


가장 거센 반대세력은 물론 녹색당과 환경단체들이다. 트뤼도 총리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며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캐나다에 강력한 에너지산업이 필요하다고 강변했지만, 화석연료의 생산과 사용 자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녹색당과 환경단체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주장이다.


파이프라인 반대 시위는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커지고 있다. 시가지 행진은 파이프라인 터미널 점거로 이어지고, 녹색당 대표를 비롯한 다수가 검거됐으며, 법원은 터미널 접근금지명령을 내렸다. 캐나다에는 25년 전 사상 최대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꼽히는 ‘숲 속의 전쟁(War in the Woods)’의 경험이 있다. 밴쿠버섬 클레요코트 만(Clayoquot Sound) 26만5000헥타르의 원시림 벌목에 반대해 수천 명의 시위자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 피스 캠프를 열었다. 여름 내내 벌목 트럭의 길목을 막으며 약 800명의 시위자들이 검거됐다. 끝내 벌목은 중단됐고, 지금 클레요코트 만 숲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동화 같은 불복종운동의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파이프라인 확장 건설은 쉽지 않은 문제다. 정부의 통제권을 벗어났다는 시각도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트뤼도 총리의 정치역량을 재평가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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